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던
피안도가 고향이신 장교출신의 육이오 참전용사이셨다.
언제나 고개는 좌로 15도 정도 삐딱한 채 검은 뿔테안경을 쓰시고
목사님 성경책 보듬듯 교과서를 가슴에 품고 조용조용 교실로 들어서는 모습은
한참 여드름 꽃이 피기 시작하는 장난기 많던 천방지축 우리들의 입에서
『존경』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게끔 하셨다.
짝꿍과의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싸움으로
내 머리통이 그놈의 숨겨진 짱돌에 무참히 난타당하여
마취 없이 쌩 바늘로 꿰매고 학교에 갔을 때에도
한 알의 꿀밤이나 꾸중 한마디 없이 책상자리만 바꿔놓으셨다.
그 후 또 다른 동무들도 수많은 사연의 자상함과 사랑을 받아
아예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담임선생님이 아닌『아버지』라고 불렀다.
1학년이 끝나 아버지는 올망졸망한 우리들을 두고 옆에 있는 여학교로 전근을 가시고
우리도 수학전공의 2학년 새로운 담임을 맞았다.
버뜨(But),
어즈버~어~~!
인생만사 새옹지마요, 학창시절 감진고래라!
꿈같은 날은 어느 덧 지나고 악몽과 같은 나머지 고삐리 날이 시작됐으니…….
우선
태생원시인지 두꺼운 안경알 너머 깊숙한 안중의 깊이는
얕은 꼼수를 쓰는 우리의 심리를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게 무시해버리고
럭비공에 깨진 유리조각을 박아 놓은 것 같은 성격은
제멋대로 튀어 어느 방향과 어떤 이유로 우리를 몰아세울지 전전긍긍하였으며
바싹 마른 장작개비 같은 손으로 귀빵맹이가 아작이 날 때는
자퇴나 전학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하여
나를 비롯한 우리 반의 불쌍한 사바중생들은
‘대망(선생님 별명)’의 방향성 없는 오늘의 꺼리를 정찰, 탐색, 분석하느라
눈치에 코치, 낌새와 통박은 나날이 일취월장하였더라.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는
각자의 심층 분석 자료와 각종 정보, 첩보들을 모아
정의, 해석, 판단, 대처, 조치, 대비, 처신, 행신을 하자는 회동을 가졌다.
아주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까탈스런 성격은 국어처럼 그저 두루뭉술한 여유의 학문이 아니고
이빨로 손톱을 물어 뜯어가며 까지 꼭 숫자로 답을 찾아야 하는,
수학이라는 넉넉함이 조금도 없는 학문을 다루다 보니
신경과민에서 오는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다”
“그럼! 따뜻한 서정시집과 명상집, 애정영화를 추천해 드리자!”
“아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지독한 싸이코패스이기에
제자된 도리로 하루 빨리 병원에 입원시켜드려야 한다.”
“잠깐! 우리 모두 선생님을 교회로 인도하자! 뭔가를 느끼시지 않을까?”
“부질없다! 오늘도 뜨거운 오줌 맞은 개구리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우리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자!
그저 이 풍진세상 시계바늘만 빨리가기를 바라자.
1년만 죽었다 치고 버티고, 견디고, 참자!”
어제 종례시간, 전날 교실청소 땡땡이의 문제로 장장 30여분 조잘이 난 ㅇㅇ이의
엄숙하고 심도 있는 말 한마디에 우리들은 그 날부터 오직 날짜가기만 바랬다.
그리하여 2학년을 거의 마친 어느 날
우리가 교무실 칠판을 염탐하여 알아낸 정보 아닌 비보는
‘대망 3학년 보통과 담임으로 1년 더 연장!’
증말! 미치고 환장해서 팔딱 팔딱 뛰겠네~
아!~ 지구를 떠나고 싶다!
“.....”
그렇게 우리는 40여 년 전
고등학교 3년 동안에 한 분의『아버지』와 한 명의『교사』를 만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