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이야기

잡초

고운(孤雲) 2012. 5. 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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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잡초입니다.

그냥 아파트 뒤뜰에 돋아난 한포기 이름 없는 잡풀입니다.

 

지금은 언제 뽑히거나 베어질지 모르는 운명이지만

저도 이른 봄 햇빛이 제법 따사로워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뭇 사람들의 관심과 귀여움을 받고 호사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방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지난 것들에 싫증이 난 사람들은

봄이 왔네~, 아이고~ 이뻐라! 요 파란 잎들 좀 봐!”하고들

호들갑과 유난을 떨어가며 쓰다듬고 반가워 하지만

사실은 제가 봄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봄이 저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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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

연이어 뽀샤시하게 꽃들을 피는 가지각색의 화초들과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푸른 잎들을 내미니까

저는 이내 눈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 나물로도 못 해 먹는다나요

그때부터는 파란이 아닌 잡초로 개명(改名)이 되어

경비아저씨들의 성가시럽고 없애버려야 할제거대상1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제가 언제 이곳에 돋아나고 싶어서 돋아났습니까?

 

남들은 파종이다 모종이다 하는 인위(人爲)와 보육(保育)으로 맞추어지고 조작되어서

비료와 관심이 부족하면 금방 헬렐레 삘렐레 하지만,

저는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빛 비추는 대로, 바램과는 상관없이 이곳으로 와

조금의 타박이나 몽니도 부리지 않고 묵묵히 상황에 따르고 처지에 순응하며

정말 잡초가 잡초같이 살 뿐입니다.

 

헌데, 이럴 땐 저도 부아가 치밉니다.

산책을 나온 건지 운동을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개쉐이(?)들이

한쪽 개다리를 들고서는 오줌발에 똥발까지! !”깔기고 가지를 않나,

앞 동 사는 꼬마 놈은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씩씩거리며

왜 애꿎은 나만 걷어 차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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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도 배추밭에 나면 잡초요,

콩밭에 피는 백합은 별 볼일 없습니다.

호박꽃도 뒤란에 피면 사랑을 받지만,

꽃밭에 보리 싹이 자라면 금시 뽑혀 버립니다.

산삼도 본시는 잡초 출신 이였다지요?

 

잘났다는 그대는

과연 필요한 자리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할 자리에서 다리를 뻗고 있나요?

제자리를 모르고 나대면

그대도 오지랖 넓은 구박덩이 청맹과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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